Ella YUN
2004. 12. 21. 22:33
美 레이 어리 ‘金 10개’ … 한국엔 양궁 김수녕 ‘金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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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루이스가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무리하게 400m 계주에 출전하려 했던 이유는 레이 어리의 기록 ‘올림픽 금메달 10개’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미국 태생의 레이 어리는 키가 198cm나 되는 거구로 높이뛰기 등 필드 종목에서 발군의 기량을 발휘했다. 그는 1900년 파리올림픽과 1904년 세인트루이스올림픽에서 각각 3종목의 스탠딩 점프에서 우승을 차지해 6개의 금메달을 땄다. 그리고 1906년 그리스에서 벌어진 ‘중간올림픽’과 1908년 런던올림픽에서 지금은 폐지된 선 채로 멀리뛰기와 높이뛰기에서 각각 금메달을 획득해 모두 10개의 금메달로 불멸의 기록을 세웠다. 다만 올림픽 역사에서는 세인트루이스올림픽과 런던올림픽 사이에 치러진 그리스 중간올림픽을 정식 대회로 인정하지 않는다. 여자 양궁의 김수녕은 1988년 서울올림픽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2관왕에 올랐다. 당시 한국은 여자 양궁 개인전에서 김수녕이 344점, 왕희경이 332점, 그리고 윤영숙이 327점으로 나란히 금, 은, 동메달을 휩쓸어 전 세계에 양궁 한국을 알렸다. 김수녕은 왕희경, 윤영숙과 함께 단체전에서도 금메달을 따 한국선수로는 처음으로 올림픽 2관왕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김수녕은 바르셀로나올림픽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뒤 은퇴했다가 8년 뒤인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단체전을 다시 석권해 한국선수로는 하계올림픽 최다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동계종목에서는 쇼트트랙의 전이경이 4개로 가장 많은 금메달을 땄다. |
다관왕 누가 또 있나 ‘88년 오토, 92년 세르보’ 수영·체조서 金 6개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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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서울올림픽의 크리스틴 오토(옛 동독)와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체조 황제’ 비탈리 세르보는 6관왕을 기록했다. 서울올림픽은 크리스틴 오토를 빼놓고 스타플레이어를 거론할 수 없다. 그는 코르넬리아 엔더, 바바라 크라우제의 뒤를 잇는 동독의 가장 뛰어난 수영선수로 서울올림픽에서 6관왕에 올라, 대회 최우수선수에게 주는 MVP를 차지했다. 이미 사망한 미국인 육상스타 그리피스 조이너를 제치고 영예로운 최우수선수상을 받은 오토는 자신의 주종목인 자유형 50m, 100m를 비롯해서 배영 100m, 접영 100m, 계영 400m, 혼계영 400m를 석권했다. 그러나 오토는 출전 종목 중 자유형 50m에서만 올림픽 신기록을 수립했을 뿐, 세계신기록을 하나도 경신하지 못해 최다관왕이라는 영예에 빛이 바래기도 했다. 오토는 자유형 50m에서 중국의 양웬리의 강력한 도전을 뿌리치며 우승을 차지했고 자유형 100m에서는 중국의 장용, 배영 100m에서는 헝가리의 크리스티나 에게르제기, 접영 100m에서는 같은 동독의 비르테 바이강, 중국의 치헨홍의 추격을 뿌리치며 우승을 차지했다. 비탈리 세르보는 바르셀로나올림픽에 출전할 당시 독립국가연합(EUN) 소속이었다. 체조는 남자의 경우 개인종목 6개와 개인종합, 단체전 등 한 대회 최대 8관왕까지 가능한데 세르보가 혼자서 6관왕을 차지한 것. 세르보의 EUN은 바르셀로나올림픽 남자체조 단체에서 중국과 일본을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개인종합에서는 EUN이 금, 은, 동메달을 모두 휩쓸었다. 단체전 동료 그레고리 미수틴과 발레리 벨렌키가 각각 은메달과 동메달을 땄다. 세르보는 그밖에 뜀틀·링·평행봉을 석권했고, 안마에서는 북한의 배길수와 공동으로 금메달을 획득해 대망의 6관왕을 차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