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rts‥
[올림픽] 제 17회 로마
Ella YUN
2004. 12. 21. 22:17
제 17회 로마 약물복용 선수 사망 큰 오점 |
▣ 메달집계
|
로마올림픽(1960.8.25~9.11)은 사상 처음으로 개회식을 비롯한 주요 경기모습이 인공위성을 통해 전 세계의 TV시청자들에게 중계되었다. 아울러 전광판이 등장하여 경기의 진행과정이 기록되었고 모든 경기결과는 전자장치에 수록되었다.
우리 선수단은 임원 20명과 선수 36명 등 56명과 심판, 회의대표, 연구원 11명을 포함한 67명으로 구성되었다. 종목은 육상, 역도, 복싱, 레슬링, 사이클, 사격, 체조, 다이빙, 승마 등 9개 종목으로, 체조와 다이빙은 올림픽 첫 출전이었다.
우리선수단은 출발때부터 상위입상에 대한 기대를 갖기 어려웠다. 4.19혁명으로 인해 체육행정에 오랜 공백기간이 있었는데다 선수 선발도 늦게 이루어졌고 정국의 혼란탓으로 제대로 훈련조차 못해 경기력에서 문제가 있었다.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이러한 불안감은 현실로 나타났다. 한국 선수단은 출전종목마다 참담한 패배의 연속이었다.
특히 한가닥 기대를 걸었던 마라톤과 역도의 침몰은 이들 종목이 국제무대의 경쟁에서 우리가 한수 아래임을 확인해 줬다. 마라톤에서 우리선수단은 이창훈, 이상철, 김연범 선수가 출전, 김연범 선수가 20위에 그치고 말았다. 우승자는 '맨발의 사나이'로 유명한 이디오피아의 비킬라 아베베였고 기록은 2시간 15분 16초로 세계신기록이었다.
7명이 출전한 역도에서는 페더급의 김해남 선수가 4위 입선하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그동안 세차례의 올림픽대회에서 거르지 않고 메달을 따냈던 역도가 이제 세계의 무대에서 밀려난 것이다.
다른 종목에 출전한 우리 선수들의 기량도 국제적인 수준에서 봤을 때는 실력차가 너무나 뚜렷했다. 지금까지 접해보지 못했던 용구나 시설들에 압도되어 제 실력을 발휘하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체조에 처음으로 출전한 우리 선수들은 경기용구가 국내에서 연습하던 것과 그 성능이나 탄력이 크게 달라 적응하느라 애를 먹었다. 이번대회에서 한국선수단은 올림픽 출전사상 처음으로 노메달이라는 부끄러운 기록을 남겼다.
로마올림픽은 정치색으로 오염됐던 멜버른대회와 달리 정치문제가 휴전상태였다는 점과, 동 서독은 양쪽 국기의 공통색인 검은색 붉은색 노란색의 3색바탕에 오륜마크를 그려넣은 국기를 들고 단일팀으로 참가했으며, 국가는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을 채택했다.
로마올림픽은 길이 기억에 남을 스포츠영웅 2명을 탄생시켰다. 맨발의 마라토너 바킬라 아베베와 캐시어스 클레어가 그들이다. 아베베는 그후 동경올림픽에서도 2시간 12분 11초로 우승을 했으며, 동경대회에선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맨발이 아니고 육상화를 신고 달렸다. 그러나 멕시코 올림픽(68년)에서는 3연패하려던 그의 꿈은 출발후 10마일 지점에서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무산되고 말았다.
아베베는 69년 자동차사고로 하반신불구가 돼 마라토너로서의 생명을 잃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고 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궁도을 연마하여 세계장애자올림픽에 출전하는 등 활발히 체육활동을 계속했다. 73년 10월 25일 맨발의 사나이는 41세의 짧은 인생을 마감했다.
훗날 무하마드 알리라는 이름으로 프로복싱계에 많은 신화를 남긴 캐시어스 클레이가 로마에 출현한 것은 18세의 어린 나結늑嗤?이미 아마전적 1백8승을 기록했던 그는 손쉽게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대회가 끝난후 프로로 전향하여 곧바로 헤비급 왕좌에 올랐으며 그후 많은 부와 명성을 누렸다.
로마올림픽이 남긴 가장 큰 오점인 약물복용에 의한 사이클선수의 사망 사고였다. 무더위 속에서 사이클 100km단체 경기 레이스 도중 덴마크대표 3명이 졸도했고 그중 쿠르트 옌센이 목숨을 잃은 일이 일어났다. 이 사고는 선수들이 혈액순환촉진을 위해 복용한 흥분제가 원인이 됐던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