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스포츠레저부 성진혁입니다.
요즘 새벽마다 유럽축구선수권 보시느라 밤잠 설치는 분들 많으실 줄 압니다. 4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대회인데다, 유럽 축구 강호들간의 맞대결이 워낙 재미있어 놓치기 아까운 기회죠. 유럽선수권은 월드컵보다 규모가 작을 뿐, 그 수준이나 흥분의 강도는 더 높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유로2004 특집기사에서 개최국 포르투갈이 이번 대회를 준비하느라 약5억5000만 유로(약7730억원)를 투자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축구 관전 등을 위해 포르투갈을 찾을 방문객은 약 150만명으로 추산했습니다. 이쯤되면 스포츠의 틀을 벗어나 거대한 산업입니다.
평소 프로축구 중계에 인색한 우리 방송사들도 앞다투어 유로2004생중계와 재방송에 많은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신문과 인터넷 언론매체 등에서도 보도 열기가 뜨겁습니다.
본선에 오른 16개국이 4개조로 나뉘어 펼친 조별리그는 24일 새벽에 끝납니다. 포르투갈을 비롯해 프랑스, 잉글랜드, 그리스, 스웨덴, 덴마크, 체코는 8강을 결정지었습니다. ‘무적함대’라던 스페인, ‘아주리 군단’ 이탈리아 등 유럽 최고의 프로리그를 운용하고 있는 두 강호가 탈락한 게 이변으로 꼽힙니다. 그래서 그리스의 선전이 더 돋보였습니다.
무엇보다 팬들의 관심은 ‘별 중의 별’을 찾는데 쏠려 있습니다. 지금까지 최대 화제선수는 단연 잉글랜드의 웨인 루니입니다. 1985년 10월생이라 아직 열아홉이 채 되지 않은 이 젊은이는 18일 B조 두 번째 경기인 스위스전서 두 골을 넣으며 대회 최연소 득점 기록을 세우더니(이 기록은 22일 스위스의 요한 볼란텐(1986년2월1일생)이 프랑스전서 득점하면서 다시 깼습니다만), 22일 크로아티아전서 다시 두 골을 터뜨려 네 골로 대회 득점 선두에 나섰습니다.
루니가 대회 전 유망주로 꼽히긴 했지만 이 정도로 잘 할 줄 예상한 전문가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영국에선 그야말로 난리가 났습니다. 진지한 성격인 대표팀의 에릭손 감독마저 루니를 젊은시절의 펠레와 비교했을 정도니까요. 현재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에버튼 소속인 루니의 몸값이 5000만 파운드(약1056억원)까지 치솟을 것이라는 다소 성급한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원더 키드(Wonder Kid)’에서 순식간에 잉글랜드의 영웅, 유럽서 가장 탐나는 축구상품으로 떠오른 웨인 루니는 어떤 선수일까요.
개인적인 말씀입니다만, 저는 루니의 이름인 웨인(Wayne)에서 생각나는 인물이 있습니다. 만화나 영화에 등장하는 배트맨(Batman) 있잖습니까. 배트맨이 평소 본모습을 감추고 사업가로 행세할 때 쓰는 성(姓)이 바로 웨인이거든요. 브루스 웨인(Bruce Wayne)이었습니다.
루니는 노동일을 하는 아버지와 학교 급식계에서 일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3형제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전설적인 그룹 비틀즈의 고향이기도 한 영국 리버풀의 북쪽 동네에서 자랐습니다. 집은 방 세 개짜리 공영주택이었습니다. 생활은 넉넉하지도, 그렇다고 궁핍하지도 않았답니다.
榮求?축구가 세계의 전부라고 믿는 영국의 수많은 어린이중 하나였습니다. 온 가족이 그랬던 것처럼, 리버풀을 연고로 한 두 프로팀 중 리버풀이 아닌 에버튼을 열성적으로 응원했습니다. 걸음마도 하기전에 아버지의 품에 안겨 에버튼의 경기를 봤다니 그럴만도 하죠.
루니는 잘 알려진대로 어렸을 적부터 축구에 두드러진 재능을 나타냈습니다. 7살때 12살 이하 지역 유소년팀에서 너댓살 많은 형들과 경쟁하며 골을 넣었고, 에버튼 유소년팀 유니폼을 입고 11세 이하 팀에서 뛸 땐 72골을 터뜨려 팀 득점기록을 갈아치우기도 했습니다. 에버튼 유소년팀서 루니를 지도했던 콜린 하비 전 감독은 BBC에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루니는 어렸을 적에 키(현재 1m78)가 또래들에 비해 특별히 크지는 않았지만 몸이 대단히 다부졌다고 합니다. 어깨가 넓고 다리가 굵고, 공을 강하게 차는 능력이 뛰어났다는 것이죠. 루니가 13살 때의 일입니다. 한 번은 중앙선 부근에서 슛을 날렸는데, 얼마나 세게 때렸는지 공이 크로스바를 맞고 거의 다시 중앙선 부근까지 튕겨져 나왔답니다. 잘 믿기지 않으시죠?
루니는 신체적인 조건이 좋았을 뿐 아니라 축구를 하는데 필요한 머리가 영리해 지도자의 가르침을 빨리 소화했습니다. 한 마디로 몸과 머리가 다 일찍 성숙했다는 뜻입니다.
루니는 이후 각급 청소년 대표를 거쳐 2002년 8월 에버튼 소속으로 프리미어리그에 데뷔합니다. 성인무대에서도 통할지 여부가 확실치 않아 처음엔 주급 80파운드(약17만원)짜리 수련선수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루니는 데뷔 두 달뒤인 2002년 10월19일 아스날전에서 영국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 사건을 일으킵니다. 당시 1―1이던 후반에 23m 중거리슛을 꽂아 결승점을 올리며 프리미어리그 최연소 득점 기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이 기록 역시 이후 제임스 밀너가 깨긴 합니다만). 루니는 이 데뷔골로 아스날의 무패행진을 30경기에서 끊으며 화려한 조명을 받습니다. 그런데 루니는 그날밤 동네로 돌아가 친구들과 또 공을 차고 자전거(BMX)를 타며 놀았다고 합니다. 나이는 속이지 못하나 봅니다.
그라운드에선 혈기를 누르지 못하는 모습을 가끔 보이긴 합니다만, 경기장 밖에선 수줍음을 잘 타고 겸손한 성격이라고 외신들은 전합니다. 소시지와 콩, 감자 튀김같은 ‘영국식’ 요리를 좋아한다지요. 강인해 보이는 인상도 전형적인 영국인 타입입니다. 곱상하게 생긴 데이비드 베컴과는 정반대의 느낌을 줍니다.
루니는 작년 2월 호주와의 A매치엔 잉글랜드 대표팀 선수로 나서 역대 최연소 대표 기록(17세111일)을 갈아치웠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에버튼과도 매주 1만3000파운드(약2745만원)를 받는 조건으로 정식 프로계약을 맺었습니다. 나이키, 코카콜라, 프링글스 등과 스폰서 계약을 맺어 연간 200만파운드(약42억원)를 벌어들이고 있다니 대단합니다. 작년엔 리버풀 교외에 있는 40만파운드짜리 집을 사서 가족, 약혼녀와 함께 살고 있다고 합니다. 약혼녀는 어릴적 소꿉친구인 콜린이라는 아가씨랍니다.
루니는 얼마전 끝난 자국 리그에선 시즌 9득점을 해 특별히 두드러지지는 않았습니다. 아스날서 뛰는 프랑스 출신 티에리 앙리가 30골로 득점왕에 오른 것과 비교하면 그렇습니다.
하지만 루니는 월드컵과 함께 세계최고의 국가대항 축구대회로 꼽히는 유로2004 무대에서 벌써 네 골을 넣어 주가를 올리고 있습니다. 대회 후 그의 상품가치가 얼마나 치솟을지는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잉글랜드 대표팀의 에릭손 감독은 루니에 대해 힘과 기술, 골 결정력을 갖춘 완전한 선수라고 칭찬합니다. 올라운드 플레이어라는 점에서 펠레보다는 아르헨티나의 축구 천재 디에고 마라도나쪽에 가깝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체력의 완급조절이 아직 약간 미숙하고, 왼발을 쓰는 기량을 좀더 갈고 닦는다면 세계를 자신의 발 아래 둘 날도 머지 않을 것 같습니다. 유로2004에서 루니의 활약이 좀 더 펼쳐지길 기대해 봅니다. 그가 25일 8강서 만날 포르투갈이라는 고비를 어떻게 넘길지가 벌써 기다려집니다. 감사합니다.
(성진혁드림 jhsung@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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