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시장경제의 굳건한 옹호자”
세계 경제학계 거두 美 프리드먼교수 별세
공화당 경제정책 토대 제공 76년 노벨 경제학상 받아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신봉하는 시카고 학파의 대부이자 20세기 세계 경제학계의 거두인 밀튼 프리드먼 스탠퍼드대 교수(94·사진)가 16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자택에서 지병인 심장병으로 별세했다. 뉴욕타임스(NYT)와 BBC 등은 ‘자유주의 이론가 별세’ 등의 제목으로 그의 이론과 업적을 다룬 특집 기사를 싣고 있다.

벤 버냉키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이 시대 최고의 경제학자가 세상을 떠났다”며 아쉬워했고, 폴 크루그만 프린스턴대 교수는 “2차 대전 직후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이론을 전개한 경제학자”라며 애도했다.

◆식당 웨이터에서 시카고학파 대부로

프리드먼 교수는 정부의 시장개입을 주장하는 전통적인 케인스 학파에 맞서 ▲안정적 통화공급 ▲작은 정부 ▲공기업 민영화 이론을 정립해 20세기 세계 경제학계를 주름잡았다.

그의 생애 자체가 하나의 드라마다. 1912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우크라이나 출신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토론을 즐겼고, 15세 때 아버지가 사망하자 식당 웨이터와 가게 종업원 생활을 하며 독학을 했다. 뉴욕 인근 뉴저지 럿거스 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한 프리드먼은 시카고 대학에서 석사 학위, 컬럼비아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35년부터 10년간 미국 재무부와 자원위원회 등에서 근무하다가 1946년 시카고 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30년간 교수로 재직했다.

프리드먼 교수는 시카고 대학 시절에 1930년대 대공황 이후 미국 경제학계의 주류로 자리잡은 케인스 학파에 맞서 시카고 학파를 확립했다. 예컨대 케인스는 대공황 상황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정책이 아주 유효하므로 정부가 경제활동에 보다 광범위하고 강력하게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민주당 출신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이에 프리드먼 교수는 세계경제가 대공황에 빠지게 된 것은 경제 활동이 위축되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중앙은행이 통화 공급량을 대폭 감소시킴으로써 극심한 금융경색을 야기시킨 것이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는 자연 실업률이 존재해 인위적 고용증가 정책이 별 효과가 없다고 생각했고, 안정적인 통화정책이 경제성장과 인플레이션 관리의 핵심요인이라고 보았다.

프리드먼 교수는 1970년대 이후 리처드 닉슨, 제럴드 포드, 로널드 레이건, 조지 H.W. 부시 등 역대 미국 공화당 행정부의 경제정책에 토대를 제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을 만들어 유행시킨 것도 그다.

◆20세기 후반 자유주의 경제사상 지배

달변인 프리드먼 교수는 거시·미시·경제사·통계학 등 경제학 전 분야에 걸쳐 50여권의 저서를 남겼다. 1962년 저서 ‘자본주의와 자유’를 통해 자유시장하에서 정부의 역할을 최소화해 개인의 정치사회적 자유를 창출해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점 때문에 그에게는 ‘자유경쟁체제의 굳건한 옹호자’, ‘작은 정부론의 기수’와 같은 애칭이 붙어 다닌다.

대처 전 영국총리는 “프리드먼은 자유 경제학이 거의 잊혀졌을 때 이를 부활시킨 지적 자유의 투사”라고 지칭했다.

프리드먼 교수는 1976년에 소비분석·통화이론·경제안정정책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경제학자들은 20세기 전반은 케인스가, 후반은 프리드먼이 경제사상을 지배했다고 평가한다.

뉴욕=김기훈특파원 khkim@chosun.com
입력 : 2006.11.17 23:03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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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lla 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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